침체된 국내 경차 시장서 고군분투하던 레이 자리까지 위협

온라인 발표회 ‘캐스퍼 프리미어’ 속 캐스퍼 모습. (사진=현대자동차그룹 제공)
온라인 발표회 ‘캐스퍼 프리미어’ 속 캐스퍼 모습. (사진=현대자동차그룹 제공)

[주간한국 송철호 기자] 경차 시장에 ‘캐스퍼’ 바람이 불고 있다. 경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현대차 캐스퍼는 과거 기아 ‘모닝’과 한국GM ‘스파크’로 잘 나갔던 국내 경차 시장을 다시 부활시킬 수 있다는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실제로 국내 경차 시장 인기 모델인 기아 ‘레이’ 자리까지 위협해 현대자동차그룹 내 선의의 경쟁이 펼쳐지고 있는 상황이다. 

캐스퍼는 지난해 9월 출시 때부터 독특하고 강인한 스타일의 내·외장 디자인과 생동감 넘치는 색상으로 소비자의 시선을 끄는데 성공했다. 특히 세계 최초로 운전석 시트가 앞으로 완전히 접히는 ‘풀 폴딩’ 시트를 적용해 남다른 실내 공간도 구현했다. 게다가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직접 구입·탑승했던 ‘광주형 일자리’ 생산 차량모델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동급 대비 비싼 캐스퍼, 가심비로 승부한다 

캐스퍼의 열풍은 실제 수치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침체됐던 국내 경차 시장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던 레이의 아성을 넘어서기 직전이기 때문이다. 자동차 통계 전문기관 카이즈유 데이터 연구소에 따르면 출시된 지 7개월이 지난 캐스퍼의 누적 판매 대수는 2만922대로 아직 레이 2만1972대(캐스퍼 출시 이후 같은 기간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캐스퍼 출시 3개월째인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3월까지는 캐스퍼가 레이 판매 대수를 앞서기 시작했다. 이미 누적 판매 대수에서 1050대 정도의 차이가 나고 있는 상황이라 올해 상반기 중 캐스퍼가 레이의 자리를 빼앗을 가능성이 있다. 

캐스퍼의 열풍은 여성이 주도하고 있다. 남성 중심인 일반적인 자동차 구매 비율과 달리 지난 7개월간 캐스퍼의 구매 비율은 여성이 50.6%로 남성 49.4%에 비해 높다.

현대차 관계자는 “차별화된 디자인과 다양한 색상을 구비한 캐스퍼는 실내 공간 활용성까지 갖추고 있어 출시 전부터 가성비만큼이나 가심비(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감)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관심이 높았다”며 “이러한 요소에 더해 캐스퍼에는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과 7개 에어백이 기본 적용되고 고강성 경량 차체 구조를 확보해 차급을 뛰어넘는 안전성을 갖춘 것이 여성에게 특히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캐스퍼는 동급 차량에 비해 차별화된 장점을 다수 가지고 있는 만큼 가격이 경차치고는 비싸다. 캐스퍼 가격은 ▲기본 트림인 스마트 1385만원 ▲중간 트림인 모던 1590만원 ▲최상위 트림인 인스퍼레이션 1870만원으로 책정돼 있다. 레이는 1260만원, 모닝이 1175만원, 스파크가 977만원에서부터 기본 트림 가격대가 책정돼 있는 것을 감안하면 확실히 캐스퍼가 비싸다. 

게다가 고사양을 다양하게 갖춘 캐스퍼의 선택사양을 최대치로 구성했을 경우 2000만원 이상의 가격이 형성될 수도 있다. 이 정도 가격대는 준중형 아반떼를 넘어서는 수준이다. 다만 캐스퍼의 복합연비는 리터당 14.3㎞로 좋은 편이다. 동급 차종의 리터당 복합연비는 모닝이 15.7㎞, 스파크가 15㎞, 레이는 13㎞다.

밴부터 전기차까지…다채로워진 캐스퍼 라인업

올해 1분기 국내 경차는 총 3만278대 판매됐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19.9% 증가한 수준이다. 같은 기간 소형차는 30%, 준대형차는 18.4% 줄어드는 등 전체 자동차 판매량이 4.1% 감소한 것과 비교하면 두드러진 증가세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촉발한 국제 유가 상승으로 국내 주유소 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2000원을 넘나들면서 상대적으로 연비가 높은 경차 선호도가 높아진 것도 경차 판매량에 영향을 줬을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고유가와 공급망 문제로 인한 신차 출고 지연으로 자동차 전체 판매량이 감소하고 있다”며 “수년간 경차 시장도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지만 지난해 하반기 캐스퍼가 등장하면서 국내 경차 시장의 부활을 견인한 데다 올해 초 현대차가 캐스퍼 밴 출시로 라인업을 확장한 것이 주효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올해 말 캐스퍼 전기차 라인업이 추가된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친환경차와 경차가 인기를 얻고 있는 유럽 시장에서 큰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그동안 전기 경차는 작은 차체를 가지고 있어 주행거리 확보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 문제가 해결된 전기차가 출시될 수 있다면 기존 캐스퍼의 장점은 더 극대화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전기차 캐스퍼의 경우 아직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지만 캐스퍼 밴은 이미 캐스퍼 전체 판매량에 가속을 붙이고 있다. 기존 밴의 경우 ‘짐 차’의 이미지가 강했지만 캐스퍼 밴은 좀 다르다. 특히 안전을 고려한 부분이 기존 경차 밴과는 차별화된 장점이다. 

현대차는 캐스퍼 밴에 전방 충돌방지 보조(차량·보행자·자전거 탑승자), 차로 이탈방지 보조, 차로 유지 보조, 운전자 주의 경고, 하이빔 보조, 전방 차량 출발 알림 등의 기능을 기본으로 담았다. 또 캐스퍼의 핫스탬핑 강판을 주요 부위에 집중적으로 적용해 충돌했을 경우 차체 변형을 최소화하는 등 안정성 확보에 공을 들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캐스퍼 밴의 가장 큰 특징은 역시 트렁크 공간이다. 캐스퍼 밴은 캐스퍼의 디자인과 안전 및 편의 사양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2열 시트 공간을 비워 940리터의 적재 공간을 확보했다. 캐스퍼 밴의 경우 자전거나 캠핑 용품을 실어도 공간이 충분해 차박(차량 내 숙박) 등의 레저용 차량으로도 인기를 끌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캐스퍼만의 차별화된 상품성을 새로운 방식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차량 탐색부터 구매까지 최적의 경험과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며 “올해 초 출시한 캐스퍼 밴 역시 고객에게 캐스퍼의 다채로운 매력을 다시 한 번 선보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송철호 기자 song@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