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심각한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각 국이 그린 에너지 전략에 속도를 내는 중이다. 이런 가운데 내연기관차가 퇴출되고 조금씩 전기차 시대가 열리고 있어 눈길을 끈다.

다만 리튬이온 배터리가 주류인 전기차의 심장을 퀀텀점프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무엇보다 리튬이온 배터리 기반 전기차의 연쇄 발화 현상이 업계의 고민거리가 된 상태에서, 전고체 배터리에 주목하는 곳들이 많아지고 있다.

1. 코로나19 치료제 / 2. 전고체 배터리 / 3. 지갑이 사라진 시대 / 4. 강 인공지능(Strong AI) / 5. 우주 경제시대 / 6.양자산업 / 7.도심항공모빌리티(UAM)

전기차 시대가 열린 이유

바이든 미 행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파리기후협약에 복귀하는 한편 탄소중립 로드맵에 강력한 시동을 걸었다. 이와 관련된 다양한 정책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움직이는 가운데 유럽에서는 강도높은 탄소국경세가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실제로 유럽연합(EU)은 7월 14일(현지시간) 전기 및 비료, 철강, 알류미늄 등에 적용되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초안을 골자로 하는 피프 포 55를 전격 발표했다.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EU는 이미 그린뉴딜이라는 목표를 달성했다"면서 "이제 기후 목표에는 정치적 합의를 넘어 법적 의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U 국가에서 생산된 제품이 EU로 들어올 때 탄소를 배출한 수준만큼 역외에서 생산된 제품도 탄소를 배출한 만큼의 비용(CBAM)을 지불하는 것이 골자다. 최초의 탄소국경세 시대가 현실이 된 셈이다.

이들이 탄소중립을 강력하게 추구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지구의 환경이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2015년 프랑스 파리에서 200개 나라가 참여한 가운데 21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1)이 열려 파리 기후협약을 체결할 당시만 해도 2100년까지 지구 평균기온을 1.5도로 유지할 생각이었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최근 IPCC 6차 보고서에 따르면 1.5도 상승의 마지노선인 2100년에서 무려 60년이 단축된 2040년 이내에 1.5도 상승이 예고되고 있다. 2018년 2030년에서 2052년 사이 1.5도 상승이라는 수정된 목표에도 훨씬 미달되는 충격적인 결과다.

북유럽 환경소녀 그레타 툰베리의 호소가 아니더라도 이제 탄소중립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자 인류 공통의 목표가 됐다. 이 과정에서 선진국들이 아직은 탄소악당에 머물러야 할 개발 도상국의 경제성장을 가로막는 유리벽을 쳤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큰 틀에서 탄소중립은 이제 세계의 공장 중국도 고민하고 결단해야 하는 핵심 사안이 됐다.

전고체 배터리라는 엘도라도

탄소중립을 위한 인류의 행보가 시작된 가운데 자연스럽게 전기차 시장이 각광받고 있다. 유럽에서는 디젤 및 휘발유를 사용하는 내연기관차의 이산화탄소 배출 기준을 오는 2030년 현재 대비 55% 강화하고 5년 뒤에는 아예 100%로 올리는 등 사실상 내연기관차를 퇴출하기로 결정했고, 미 바이든 행정부도 강력한 전기차 로드맵을 추진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전기차 배터리, 이차전지 시장이 각광받으며 LG에너지솔루션 및 SK이노베이션, 삼성SDI의 행보에 시동이 걸렸다. 이들은 공격적인 증설을 통해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다만 업계에서는 본격적인 전기차 시장이 열리며 또 하나의 게임 체인저인 전고체 배터리에 주목하고 있다.

전고체 배터리. 출처=갈무리
전고체 배터리. 출처=갈무리

전고체 배터리는 배터리의 양극과 음극 사이에 있는 전해질을 액체에서 고체로 대체하는 것으로 현재 시장에서 사용중인 리튬 이온전지와 비교해 대용량 배터리 구현이 가능하고, 안전성을 높인 것이 특징이다. 전해액이 액체인 리튬이온 배터리와 달리 '고체'로 되어있어 폭발 위험성이 낮다는 것도 강점이다.

최근 볼트EV 시리즈 연쇄 발화와 같은 비극은 전고체 배터리에게 해당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만약 등장만 한다면 리튬이온 기반의 전기차 시장 역사를 새롭게 쓸 수 있다. 전고체 배터리가 게임 체인저인 이유다.

일본의 도요타가 전고체 배터리 업계에서 가장 두각을 보인다. 2000년대부터 관련 연구를 시작한 가운데 2025년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글로벌 전고체 배터리 관련 특허도 1000개에 달해 전체의 4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6월 개발되어 최근 유튜브 등을 통해 공개된 도요타의 전고체 배터리 차량이 눈길을 끈다. 당시 영상을 통해 구체적인 사양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고요타는 전고체 배터리를 통해 실제 차량을 시연하며 상용화 가능성을 보였다는 평가다. 도요타는 하이브리드차(HV)와 전기차에 탑재하는 배터리 생산 및 개발에 2030년까지 1조5000억엔(약 16조원)을 투자하며 시장을 선도한다는 각오다.

도요타가 공개한 전고체 배터리 차량. 출처=갈무리
도요타가 공개한 전고체 배터리 차량. 출처=갈무리

물론 도요타만 전고체 배터리 시장을 종횡무진하는 것이 아니다. BMW는 2017년부터 미국의 전고체 배터리 개발 업체인 솔리드파워와 협업하는 한편 2030년부터 전고체 배터리로 작동되는 전기차를 발표한다는 계획을 공개했다. 나아가 솔리드파워는 2023년까지 전고체 배터리를, 2028년에는 이를 적용하는 전기차를 각각 양산하겠다는 목표를 세운 상태다.

폭스바겐은 독일 볼프스부르크에서 파워데이(Power Day)를 열어 총 생산량 240GWh 규모의 기가팩토리 6곳을 구축한다 발표하는 한편 전고체 배터리 전략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교세라·도레이·무라타·스미토모화학·히타치 등 여러 일본 기업들이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뛰어든 상황이다.

국내 배터리 업체들도 전고체 배터리 전략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당장 삼성전자 종합 기술원은 전고체 배터리의 수명과 안정성을 높이면서 크기는 반으로 줄일 수 있는 원천 기술을 통해 1회 충전 시 800킬로미터(km) 주행 및 1000회 이상 충방전이 가능한 전고체 배터리를 만들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최근 의미있는 한 방을 보여줬다. 전고체 배터리의 난제인 배터리 수명 문제를 풀었기 때문이다.

관련 연구논문이 세계 과학계 연구성과 지표의 기준이 되는 최고 권위의 과학 저널 ‘사이언스(Science)’지(373권 6562호)에 실린 가운데 연구팀은 전고체 배터리 수명이 짧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음극에서 도전(導電)재와 바인더를 제거하고 5um(마이크로미터) 내외의 입자 크기를 가진 ‘마이크로 실리콘 음극재’를 적용했다.

실리콘 음극재는 기존 흑연 음극재에 비해 10배 높은 용량을 가져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 향상을 위한 필수 소재로 손꼽히지만, 충방전 중 큰 부피 변화 때문에 실제 적용이 까다로운 소재로 알려져 있다.

기존 연구에서 실리콘 음극재의 부피 변화를 억제하기 위해 100nm(나노미터, 0.1마이크로미터) 이하의 입자 크기를 가진 나노 실리콘을 적용한 데 반해, 본 연구에 적용된 마이크로 실리콘은 나노 실리콘보다 저렴하고 사용이 더 용이하다는 이점이 있다.

특히, 500번 이상의 충전과 방전 이후에도 80%이상의 잔존 용량을 유지하고, 현재 상용화된 리튬이온 배터리에 비해 에너지 밀도도 약 40% 높이는 것이 가능해 전고체 배터리의 상용화를 위한 기술적인 진일보를 이뤄냈다는 평가다.

물론 전고체 배터리가 완전 상용화의 길을 걸으려면 해결해야 할 난제는 아직 많다. LG에너지솔루션이 수명 문제를 해결하고 기타 삼성 및 소재 연구단의 성과들이 속속 나오고 있으나 아직 전고체 배터리의 가격·수명·에너지 밀도 등이 상업화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 중론이다.

특히 고체 전해질은 액체 전해질에 비해 리튬 이온의 이동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배터리 출력이 저하되는 것도 풀어야 할 난제다. 안정성에서 강력한 존재감을 보여주지만 에너지 밀도에 있어 아직 전고체 배터리가 가야 할 길은 멀다.

한국전기연구원(KERI) 차세대 전지 연구 센터의 하윤철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이 '공침법'을 이용해 전고체 배터리용 '황화물 계열 고체 전해질'을 저가로 대량 합성하는 신기술을 개발하는 성과를 냈으나, 아직은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를 위해 풀어야 할 난제들이 수두룩하다. 그러나 리튬이온 기반의 전기차들이 간혹 화재 사건을 일으키며 논란을 키우는 상황에서 게임 체인저인 전고체 배터리에 대한 기대가 여전한 것도 사실이다.

LG에너지솔루션의 전고체 배터리 기술력. 출처=LG
LG에너지솔루션의 전고체 배터리 기술력. 출처=LG

전기차 넘어 UAM으로

전고체 배터리는 미래 전기차 배터리를 넘어 최근 완성차 업체들이 주목하는 UAM(도심항공모빌리티)에서도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

현대자동차의 SA-1을 필두로 현재 많은 완성차 업체들이 UAM에 주목하고 있다. 로봇 기술의 발전으로 모빌리티의 사용자 경험을 전기차, 자율주행차 '플러스 알파'로 키우는 상태에서 UAM을 중심으로 하는 입체적인 '이동의 모든 것'을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승객의 이동은 물론 오프라인 거점만 존재한다면 물류 인프라 전략까지 구사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전고체 배터리가 UAM에 적극적으로 지원된다면 이 역시 게임 체인져가 될 수 있다는 평가다. 전고체 배터리의 미래가 전기차를 넘어 UAM까지 섭렵하는 가운데 시장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계속>